[말차라떼] 가스라이팅

오광조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근래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해 익숙해진 말이다.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지배력을 행사해 결국 파국으로 몰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패트릭 해밀턴의 희곡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희곡은 가스등을 사용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의 한 가정이 배경이다. 그 시대의 건물은 가스를 나눠 쓰는 구조라 한 가스등을 켜면 다른 가스등이 어두워진다. 남편 매닝엄은 15년 전 보석을 빼앗기 위해 노부인을 살해했다.
그 보석을 찾으려고 신분을 위조해 노부인의 상속자 벨라와 결혼한다. 그는 매일 밤 다락방을 뒤진다. 그는 심리적 속임수로 벨라의 정신을 지배한다. 그녀가 시계를 훔쳤고, 액자를 몰래 치웠으며, 강아지를 학대했고, 영수증을 잃어버렸다고 믿게 만든다. 그녀의 정신이 불안정하다고 세뇌한다.
남편이 화를 내고 집을 나가면 어김없이 방안의 가스등이 어두워지고 다락에서는 발소리가 들린다. 반복되는 상황에 아내는 불안해하지만 남편은 그녀가 정신이상으로 환청을 듣는 것처럼 몰아간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판단력이 비정상적이라 몰아가 결국 수긍하고 의존하게 만드는 이런 행태를 본떠, 미국 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은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가스라이팅은 가정·학교·군대·직장·친구 등 일상생활에서 주로 발생한다. 연인 관계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해자는 상황을 조작하고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의 자아를 흔든다.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지배력을 강화한다.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켜 상대방을 자유자재로 다루거나 그 사람이 가진 재산 등을 탈취한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자존감을 상실한다. 가해자의 의도대로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가평계곡 살인 사건의 범인 이은해는 피해자인 전남편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정식 학술용어가 아니라 정의와 개념이 모호하다. 일반인도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남발하고, 언론도 세뇌·예속화라는 기존 용어를 모두 ‘가스라이팅’으로 바꿔 부른다. 학술용어도 가스라이팅된 것 같다.
출처 : 자유일보(https://www.jayupress.com)